숨쉬듯 가볍게 3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랑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수학하면서 용아 박용철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 제3호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은 독립이 될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하면서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은 생애 86편의 시를 남겼으며, 정부에서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현재의 영랑생가는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