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가 꺼진 은신처
기존 소설의 하위 장르를 뒤섞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노래 [마루가 꺼진 은신처]에서 영감이 시작된 소설
이치은의 신작 『마루가 꺼진 은신처』는 매력적인 악몽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마치 M.C 에셔의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회화를 닮았다. 혹은 가장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추구했던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표가 그린 배경음과, 가사 속의 메타포를 패스티시(혼성모방)한 소설이다.
문학적 실험과 고안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이치은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구성을 선보인다. 우선 문학의 하위 장르인 미스터리, 판타지를 혼융한 소설이다. 꿈/실제, 진짜/가짜, 참/거짓, 실제/허구가 뒤섞인 리얼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톱니바퀴들이 모두 맞물려 잘 진행되던 계획이, 알 수 없는 힘/조직에 의해서 하나하나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면, 한마디로 미스터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 「라쇼몽」 같은 변주와 다성음악적 구성이 있는 소설이다. 하나의 행위/사건이 4번의 시도에 의해 각각 다르게 서술된다. 또 시간과 시점과 사건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재배치된다.
『마루가 꺼진 은신처』는 일급 킬러 ‘나’가 암살 의뢰를 수행하는 사흘간의 행적을 뼈대로, 그 수행 과정에 연루된 인물들의 사연을 모자이크식으로 엮은 이야기이다. 이 인물들의 사연 속에서 또 다른 인물들이 꼬리를 물며 등장해 충돌하고 굴절하며 점점 이야기의 그물코가 촘촘해진다.
킬러 ‘나’는 의뢰받은 살인을 수행하고자 할 때 의뢰인으로부터 조건을 제시받는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살인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그 살인 행위를 돕는 조력자(톱니바퀴)들과 같이해야 한다는 것. 킬러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 역시 치밀한 살해 계획의 한 톱니바퀴가 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전체 살해 계획의 조각난 부품이었던 수많은 조역들이, 한 명 한 명 제거돼 나간다. 결국, 톱니바퀴들은 ‘마루가 꺼진 은신처’에서 보낸 처형자(뒤처리반)에 의해 차례차례 죽음을 당한다.
주인공 킬러 역시 정체 모를 누군가가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처형자들로부터 벗어나 은신처를 찾으려 한다. 그러면서, 킬러 ‘나’는 수많은 조역들이 맞닥뜨렸던 그 우연과 필연, 의심과 맹목의 연쇄로 이루어진 삶의 현장들을 하나하나 목도하게 된다. 결국, 킬러는 은신처에 도달하지만, 이는 ‘마루가 꺼진’ 은신처이다.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1998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고안력이 뛰어난 작품”, “상투적 교훈을 배격하는 문장의 탐구력”(김우창/문학평론가), “소설 문체의 매력”(조성기/소설가) 등 치밀한 구성과 독특한 문체가 높이 평가받으며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신예로 기대를 모았다. 2003년 『유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9년 『비밀 경기자』, 2014년 『노예 틈입자 파괴자』(2014년 세종도서 문학 부문 선정), 2015년 『키브라, 기억의 원점』을 발표하였다.
작가의 말
1 장 불화(不和)의 소멸
2 장 소멸 직전 I
3 장 첫 번째 시도
4 장 소멸 직전 II
5 장 두 번째 시도
6 장 소멸 직전 III
7 장 세 번째 시도
8 장 소멸 직전 IV
9 장 마루가 꺼진 은신처
발문(강영규) : 매력적인 악몽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