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종소리\n\n\n흙은 소리가 없어 울지 못한다\n제 자식들의 덧없는 주검을\n가슴에 묻어두고 삭일 뿐\n소리를 낼 수가 없다\n그러나 흙은\n제 몸을 떼어 빚은 사람을 시켜\n살아있는 동안\n하늘에 종을 걸고 치게 한다\n소리 없는 가슴들\n흙덩이가 온몸으로 부서지는\n소리를 낸다.\n- 『썩지 않는 슬픔』\n\n\n\n섬\n\n\n별 속에는 섬이 있다\n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n섬 하나 떠 있다\n꺼지지 않는 그 섬 하나 있기에\n멀리 보는 눈빛마다\n별들은 오래오래 반짝이리\n\n꽃 속에는 섬이 있다\n아직 아무도 발 딛지 않은\n섬 하나 숨어 있다\n지워지지 않는 그 섬 하나 있기에\n닿지 않는 손끝에서\n꽃들은 철철이 피어나리\n?\n눈물 속에는 섬이 있다\n아무도 노 저어 닿지 못한\n섬 하나 살고 있다\n손짓하는 그 섬 하나 있기에\n멀리서 그대와 나는\n날마다 저물도록 헤매이리.\n- 『썩지 않는 슬픔』\n\n\n\n범인\n\n\n삽질하던 손을 멈추고\n사내는 주위를 둘러본다\n여전히 하늘은 푸르고\n골짜기는 가랑잎만 살랑인다\n손발이 묶인 어린 계집아이를\n구덩이 속으로 사납게 밀어 넣는다\n버둥대는 계집애의 질린 얼굴이\n파놓은 흙빛과 하나다\n후미진 양지밭에\n흰 들국화가 오종종 몰려 서 있다\n사내는 냄새를 맡아보고\n꽃잎을 손으로 짓이겨본다\n가랑잎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고\n거칠게 수음을 하기 시작한다\n산길을 내려가는 사내의 손에\n딸애한테 주려고 꺾은\n빨간 까치밥 열매가 들려 있다\n하늘이 푸르고 적막하다.\n- 『썩지 않는 슬픔』

저자소개

국문학자, 시인. 배재대학교 인문대 명예교수. 시집에 『썩지 않는 슬픔』, 『나는 거기에 없었다』등 다수. 저서에 『도의 시학』, 『도와 생태적 상상력』 등 다수. 옮긴 책에 『삼국유사』,『구운몽』 등이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