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겨울, 어린 누이를 위하여
작가 이순원은 장편 <순수>에서 68년 ~ 98년까지 지난 세월을 10년 단위로 끊어본다. 그리고 그 4차례의 시대마다 폭력적 남성성, 부정의한 경제, 부도덕한 사회, 물신적 향락 등에 짓밟히고 상처입은 ‘여성의 성’을 연작 형식으로 꾸몄다.
시절에 새겨진 각각의 상흔을 알몸 그대로 부비며 확인하는 고통을 느꼈다면 올바른 독법이다.
“20대라는 나이를 살고 있는 여성들. 그들을 통해 그 시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누이들, 그 시절마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비정한 사회의 풍경.”
[램프 속의 여자][슬픈 직녀][로코코 거리의 여자][어린 누이를 위하여] 등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각 68년, 78년, 88년, 98년의 성을 드러낸다.
무지한 산골 청년들에게 윤간당한 68년의 은집,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회사를 위해 일본인 사업가의 후처로 떠나는 78년의 기숙, 그리고 나이트클럽의 마담으로 다시 돌아온 88년의 기숙, 원조교제로 용돈을 벌며 주유소 쪽방에서 성을 유린당하는 98년의 윤희까지.
“60년대만 해도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면, 70년대는 박정희 유신정권과 산업화라는 구호로 기억되는 시대였죠. 88년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의도적으로 성의 타락이 조장되던 시절이었습니다. 98년은 IMF라는 비정상적 상황이 있었죠.”
하지만 작가는 사회상을 읽어내라고 독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장을 배제한 채 그 장면들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절망, 울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보면 독자는 역설적으로 그 ‘투명한 아픔’에 몰입할 것이므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되고, 1988년 단편 「낮달」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말을 찾아서」 「은비령」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램프 속의 여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