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예술과학대학교 전자책도서관

책소개

맞습니다. 나는 그날 석유를 한 통 샀습니다. 석유가 필요했으니까요. 특별히 그 가게를 택한 이유는 없습니다. 우연이지요. 선생은 담배나 버스 토큰을 살 때 특별한 인연이 있는 가게만을 이용합니까? 아, 담배를 피우시지 않는다구요?

네? 그 점이 궁금하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때 이미 내게는 방화에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의 말대로 석유를 사러 갈 때 모든 사람이 불을 지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나서 곧바로 성냥을 그었습니다. 불길이 확 타오르더군요. 여러 가지 종류의 신문과 함께 옷을 벗어부친 현란한 포즈의 여자들을 표지에 내세운 주간지 따위가 진열되어 있던 곳, 그 안에 꼭 한 사람이 들어앉아서 돈을 받고 버스표나 신문들, 또는 복권 따위를 팔던 그 조그만 상자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나는 바로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하지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콜라보다는 보리차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콜라는 더 갈증을 나게 해서‥‥‥ 그래요? 그렇다면 콜라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주세요‥‥‥ 예? 아직 안 끝났다구요? 이제 시작이에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더 무슨? ‥‥‥글쎄, 그건 나와는 상관없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나는 세 개의 복권 판매소만을‥‥‥.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세상 밖으로]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과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가시나무 그늘] [따뜻한 비] [황금가면] [생의 이면] [내 안에 또 누가 있나] [사랑의 전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와 산문집 [내 영혼의 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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