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꺾인 자의 잠
그는 마치 한쪽 다리가 꺾이기라도 한 것처럼 삐딱하게 서서 객석을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런 기형적인 자세로 버티고 서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한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쉬운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로 하지.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부터 말이야. 악어가 아가리를 있는 한껏 벌리고서 달려들 때, 만화의 주인공은 어떻게 하던가. 때로 그는 요령있게 그 아가리를 다물게 하여 줄로 묶어버리곤 하지. 하지만 그건 재미없는 일이야. 그보다는 길다란 나무 토막을 그 아가리 사이에 끼워넣어서 악어가 물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훨씬 흥미롭고도 기발한 거지. 나는 자주 그 사실을 머리에 떠올리곤 해. 그건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대체 과연 누가 제일 먼저 그런 발상을 했을까. 어떻게 아가리를 다물게 하는 대신, 벌어진 상태 그대로 그 악어를 꼼짝못하게 할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나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리 꺾인 자의 잠, 사는 일의 고통이 그 죽음과도 같은 잠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었지만, 내 몸의 통증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돌아가자. 이제 조만간 폭풍우가 몰려 올 것이다. 나는 입안으로 그렇게 웅얼거렸다. 어디선가 빛도 없이 우르릉 우르릉 천둥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1958년 춘천 출생.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맹점』 당선.
창작집 『공중누각』, 『화두, 기록, 화석』, 장편소설 『고래뱃속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4부작, 장편소설 『벽화 그리는 남자』, 창작집 『내 정신의 그믐』, 장편소설 『불멸과 소멸』, 창작집 『분신들』, 장편소설 『매미』, 짧은 소설 모음집 『모든 신 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다』 출간.
윤동주문학상(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1993년).
현재 한신대학교 한국문화학부(문예창작학 전공)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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