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희한하게도, 아픔을 간직한 사람의 눈에 비친 자연은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듯하다. 이 사진집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김영갑은 1985년부터 아예 제주도에 정착,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의 중산간 들녘을 필름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어느 날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홀로 투병 중이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에 담긴 제주도의 풍광은 그러한 사실과 전혀 무관하리만치 아름답고, 투명하고, 장엄하다.
현재 김영갑은 2년 전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의 한 폐교를 임대하여 혼자 힘으로 만든 자신만의 상설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이 책은 그간의 여정과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사진들로 엮은 사진 산문집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만의 독특한 어투에 담아 담담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언제나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희망.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사진에 담긴 제주도의 풍광만큼이나 아름답고, 투명하고, 장엄하다.
1957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사진 갤러리를 만들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고, 관광지 제주가 아닌 섬의 속살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
작고 보잘것없는 곳에 숨겨두신 희망 / 황대권
시작을 위한 이야기
1..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세상에서 제일 뱃속 편한 놈
그 여름의 물난리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
고향이 어디꽈? 빈 방이 없수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지키지 않아도 좋으 약속
나는 바람을 안고 초원을 떠돈다
오름에서 느끼는 오르가슴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한라산 기슭의 노루가 되다
어머니의 쌈지
상처투성이 아버지의 죽음
결혼도 못하는 소나이놈
영개바, 나이들엉 어떵허려고
나의 전속 모델
뭍의 것들, 육지 것들
믿을 수 없는 일기예보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떠나보내는 심정
다시 마라도
내 삶의 길라잡이
2..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동백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
혼자 부르던 노래마저 그치니
어둠 속에서 길을 잃다
몰입의 황홀함
유효 기간
기다림은 나의 삶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 초대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다
폭풍우 속에서도 태양은 떠오른다
한겨울에 숨어 있는 봄
이어도를 훔쳐본 작가 / 안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