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저자
미진 지음
출판사
책과이음
출판일
2023-03-30
등록일
2023-07-07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4MB
공급사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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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무리 애쓰거나 어디를 방랑하든
우리의 피로한 희망은
평온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내밀하고 단단한 기억

“우리 집은 좋으면서도 슬펐다”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비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들썩이고 송충이가 비처럼 내리던 만리동 꼭대기 집, 가을비가 내릴 때마다 세상 모든 낙엽이 모여드는 아현동의 반지하 연립주택, 엄마의 평생소원대로 마침내 장만한 봉천동의 네모반듯한 집, 결혼 후 세입자로서 아홉 번의 이사를 하며 거쳐 간 때로는 춥고 때로는 따뜻했던 집. 작가는 세상에 태어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친 몸을 누인 그 모든 집이라는 공간에 촘촘하게 엮은 그물을 깊이 내려 단단한 기억을 길어 올린다.

삶의 결핍이 빚은 다정한 생의 의지
크든 작든, 춥든 온화하든, 모나든 반듯하든, 집은 누구에게나 간절한 바람과 자기 몫만큼의 생의 의지가 깃든 공간일 것이다. 작가의 집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씻기고 치우고 무언가를 깨끗이하는 데 평생을 쏟은 바지런한 엄마는 언제고 떠날 허름한 집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릇과 화분과 항아리를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짓고 고치고 땜질하는 일에 익숙한 아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의 어디를 고쳐야 한 계절을 또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살피고 손봤다. 그 시절의 부모가 그러했듯, 작가의 엄마와 아빠는 오직 내 집 갖는 것을 목표로 묵묵히 내핍을 감내하고, 유일하게 햇살이 들어오는 방을 자식들에게 양보한 채 컴컴하고 어두운 무덤 같은 방에서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잠을 청했다. 삶은 고되었으나 누구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사라진 것들에서 끌어올린 무수한 감정의 타래
행복과 슬픔, 분노와 기쁨이 조금씩 뒤섞인 기억의 풍경 속에서 작가는 특유의 문장력으로 집 너머, 공간 너머의 것들을 한껏 탐험한다. 그곳에는 스케치북만 한 창을 통해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홉 살의 나와, 중학생이던 어느 봄에 교실 창문을 타고 환청처럼 들린 포클레인 소리와 엄마의 울음소리에 러너가 되어 달린 길이, 단짝 친구와 함께 밤늦도록 차가운 풀밭에 뒹굴며 올려다본 까만 하늘이 들어 있다. 지붕갈이를 하려고 사다리에 위태롭게 디딘 아빠의 상처투성이 다리 아래로 보이는 여기저기 빠지고 두꺼비처럼 자란 검은 발톱이, 몸의 기능을 조금씩 잃어가며 몇 알 남지 않은 쌀자루처럼 사방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엄마의 쇠약한 등이, 가난과 모순에 고개를 외로 돌리면서도 결코 아래로 숙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검은 하늘에 박힌 별처럼 이름 모를 무수한 감정이 잘게 부서지던 시절에 관한 비밀스러운 고백은 우리를 곧장 각자의 과거 속으로 불러들인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듯, 세월은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 시절의 동네와 집은 이미 허물리고 사라졌다. 내 것 네 것 따로 없는 열두 가족이 한데 어울리며 살아가던 곳에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서 위용을 뽐내고, 시장에서 산 짐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오르던 만리동 고개에는 재개발을 알리는 노란 현수막이 당당하게 휘날린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작가가 사라진 집을 애써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존재했던 그곳에 다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억할 것을 권한다. 사회적 쓸모 혹은 미추와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기억은 그 자체로 값지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삶을 살든, 아무리 애쓰거나 어디를 방랑하든, 우리의 피로한 희망은 평온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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