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
■ 이 어지러운 시대에 읽는
고결한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
정화가 필요한 시대
■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기생 시인
■ 천민출신의 시인 유희경,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허균,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여인 매창의 사랑 이야기
■ 2016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선정작
어찌하여 이 작품에 나타나는 매창은 이렇듯 난하지 않으면서도 향기를 머금고 작품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며 더욱 아득해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로지 이매창의 ‘몸’에 실린 작가 자신의 담백한 마음 세계 때문일 것이다.
매창은 끝내 이 남성적 세속 세계의 울타리 바깥, 월명암과 변산 바다의 소나무 냄새, 바다 내음새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생명을 받았다 떠나는 인간의 숙명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거쳐 그녀는 그녀 자신이 평생 생각해 온 죽음과 묵연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작중에 그려진 매창의 ‘처음과 끝’이 모두 최옥정 작가 그 자신의 것이리라고…….
소나무와 바다와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한동안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 『매창』, 해설 중에서
■ 고결하고도 뜨거운 성정의 소유자 이매창은…
- 황진이와 함께 조선 여성 시조 및 한시의 명인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이매창은 한낱 기생이었으되 신분과 직업의 한계를 넘어 예술의 높고 깊은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안현 아전의 여식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에게 글을 익히며 자라난 매창은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는 허경진에 의해 「취한 손님에게」로 번역된 오언절구의 한시에 얽힌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어느 날 술 취한 손님이 매창의 명주 저고리를 잡으니 그 손을 따라 저고리가 찢어졌다. 매창은 명주 저고리 찢어진 것은 아쉽지 않으나 그가 베푼 정조차 끊김을 두려워한다고 노래했다. 술과 가무가 있는 남성들의 놀잇상에서 살아가야 했던 매창은 그럼에도 시로써 양반을 타이를 수 있는 높은 품격의 소유자였다.
매창이 불과 서른여덟 살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시 수백 편이 이리저리 흩어짐에 부안 아전들 손으로 매창집이 엮이어 모두 쉰여덟 편 시들이 『매창집』 이름 아래 모이게 되었다.
최옥정 작가의 원고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래전에 백광훈, 최경창, 이달의 삼당시인을 비롯하여 애틋하게 읽던 허경진 번역 한시집의 하나인 『매창 시집』을 다시 읽었다. 여기서 그의 주석을 통하여 매창의 고독한 예술혼이 표백된 시 한 수를 접할 수 있었다.
칠언절구 「자한박명ㅡ기막힌 운명을 스스로 한탄하다」에서 매창은 자신의 고독한 심경을 먼 옛날 초산에서 옥덩이를 주워 세 번이나 임금께 바쳤던 ‘변화’라는 사람의 참극에 비유하여 노래했다. 처음에는 여왕, 다음에는 무왕에게 옥덩이를 바쳤지만 왕으로부터 감정을 의뢰받은 사람은 그것이 한갓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했다. 화가 난 왕들은 변화의 발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차례로 하나씩 잘라버리고 말았다. 문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초산 아래서 그 옥덩이를 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그런 참담 끝에서야 마침내 억울함이 밝혀졌다는 고사를 빌려 매창은 모두들 피리를 좋아하는 세상에서 거문고를 타며 세상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감해 했다. 그녀는 이 시에서 초산을 형산(荊山)이라 표현하여 자신의 삶을 형극의 길을 가는 것에 비유했다.
이러한 매창이었던 만큼 그녀의 사랑 또한 황진이처럼 관능이 흐른다기보다 기다림과 외로움, 쓸쓸함, 한탄과 허무로 점철된 것이었다. 황진이의 시조에도 「어저 내일이야」나 「동짓달 기나긴 밤을」처럼 기다림과 회한이 담긴 시가 없지 않으나 다른 한쪽에 「청산리 벽계수야」도 있다. 또 지족선사, 서화담과의 일화가 있어 애욕과 풍류가 어우러진 황진이의 인생을 전달해 주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매창의 사랑은 유희경과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 그 뒤의 기약 없는 재회가 보여주듯이 품격과 인고와 기다림이 따르는 것이었다. 또 당대의 문장가 허균과의 만남과 그 사제적 교류가 보여주듯이 그녀는 시악과 철학이 한데 어우러진 플라톤적 사랑의 차원을 감내해마지 않았다.
최옥정 작가의 이번 소설이 훌륭한 것은 이러한 매창의 삶과 인격이 손에 잡힐 듯 여실하게 그려지는데 있다. 작중 곳곳에서 조선 중기를 살아가는 기녀이자 예인인 매창의 고절한 모습이 살아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폐병이 깊어 죽음에 다다른 매창의 모습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처절하게 묘사했다.
세 가지가 검어서 고왔던 여인 매창은 어둠에 한 덩어리의 어둠을 보태며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흑단 같은 머리도, 머루알 같던 검은 눈동자도, 까마귀 깃털 같은 눈썹도 어둠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침침한 달빛에 그녀의 얼굴이 희게 빛났다. 지병으로 창백해진 얼굴이 마지막으로 한번 환히 빛났다. 한때는 이슬에 젖은 매화를 닮았던 얼굴에 쇳조각처럼 차갑고 결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배에서 올라오던 숨이 가슴에서 나오다가 차츰 위로 올라와 목에서 밭은 숨이 나왔다. 누가 깰까 봐 기침을 참는 것이 병증을 악화시켰다. 들이쉬는 숨은 부드럽게 흘러들지 못하고 그물 같은 것에 턱턱 걸렸다. 그때마다 기침이 터졌다. 기침은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기력을 더 빨리 소진시켰다.
풍수화토로 이루어진 몸은 죽으면 다시 풍수화토로 돌아가는 법. 매창은 밭은기침과 함께 피를 토한다. 무명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엎어진다. (16쪽?17쪽)
죽음이 다가온 순간에도 매창은 병 속에서 오히려 차갑고 결연한 태도를 비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난다. 최옥정 작가는 매창을 죽음에 이르러서조차 \"돌아보면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삶을 긍정하는 존재로 그리되 이를 위해 자신의 짧은 삶을 거문고 하나에 의지하여 차갑게 버텨내도록 했다.
■ 이룰 수 없는 사랑, 타락할 수 없는 마음
- 유혹과 고독을 이겨낸 예술가 기생
소설 속에서 사랑하는 남자 유희경과의 기쁨은 짧고 이별과 기다림의 시간은 길다. 매창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마흔여덟 살 유희경을 만나 그의 시와 성품에 깊이 들어 평생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기록과 남겨진 시가 말해주듯 말 못할 사랑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으나 정작 그들이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극히 짧았다. 최옥정 작가는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에 나타나는 여성 화자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으나 그 기다림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지키는 매창의 삶의 태도를 그렸다. 이귀에서 허균으로 나아간 그녀의 남자들 관계에서도 매창의 마음은 어지럽혀지지 않고 귀하게 남았다.
어찌하여 이 작품에 나타나는 매창은 이렇듯 난하지 않으면서도 향기를 머금고 작품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며 더욱 아득해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로지 이매창의 ‘몸’에 실린 작가 자신의 담백한 마음 세계 때문일 것이다.
황진이 이야기가 거듭 발표, 출간되어 온 것과 달리 매창의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빈번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홍종화의 『매창』(이가서, 2005), 윤지강의 『기생 매창』(예담, 2013)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 매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황진이 이야기가 두고두고 거듭 새로 쓰여 온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쓰인 최옥정 작가의 『매창』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 걸까?
이는 김훈의 『칼의 노래』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훈 작가는 이순신의 새 이야기 『『칼의 노래』로 큰 각광을 받은 후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의 장편 역사소설을 차례로 발표했다. 이 가운데 『칼의 노래』는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가장 성공적이었다. 그 특장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삼엄한 칼날 위를 살아가야 했던 이순신의 절박하고도 가파른 내면세계를 깊게 파헤쳐 조각해 보인데 있었다.
국가, 당파싸움, 전장,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배경으로 이순신이라는 한 초인적 존재의 생사관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국가와 국민을 문제 삼는 현대적 시사성과 작품 전체에 흐르는 남성적 체취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에 이입된 작가의 내면성은 풍부하고 깊다.
최옥정 작가의 『매창』에 흐르는 주인공의 내면성을 『칼의 노래』의 그것에 비교해 볼 수 있다. 여성작가가 쓴 여성 시인의 삶에 관한 소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매창』은 임진, 정유 국제전쟁 시기를 살아간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음에도 국가, 전쟁, 당파싸움 같은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 소설 『등대로』의 짧은 2부에서 다루어지듯이 인생이라는 이름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들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에 작가는 매창의 삶의 감성과 감각을 전면에 배치한다. 즉 내면을 풍부하게 그리는 점에서는 같되, 최옥정 쪽은 김훈 쪽에 비해 훨씬 더 인생 자체의 의미에 접근한다. 비록 이것이 큰 작가 김훈의 작의를 왜곡 이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매창』을 그렇게 읽었다.
■ 유려하고 깊이 있는 문장으로 매창의 육성이 들리는 듯 써 내려간 소설
- 어지럽고 힘겨운 시대에 읽는 고결한 여성의 초상
최옥정 작가의 거문고를 타는 듯한 문장들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내 기억의 어둠침침한 광 안에 버려두었던 옛 물상들의 세상을 떠올렸다. 그런 움직임이 일 때마다 또한 최옥정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섬세한 공을 길게 시간을 늘여 들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그 실례가 될 것이다.
(가)
춘분이 지나면서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따사로워졌다. 매창은 마루에 앉아서 앞마당을 내다보거나 뒷마당을 걸으며 낮 시간을 보냈다. 배롱나무 이파리의 초록색도 날마다 새로 태어난 듯 짙어졌다. 냉이, 광대나물, 벌금자리 같은 자잘한 풀꽃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개화의 행진을 이어갔다. 꽃들은 봉오리를 급히 벌리며 향기 있는 것은 향기를, 향기 없는 것은 비린 풋내를 뿜어냈다. 새 발자국이 보일 정도로 말끔히 쓸어둔 마당으로 미풍이 불었다. 고소한 나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집 안 곳으로 퍼져나갔다. 매창은 산수유를 한 다발 꺾어서 화병에 꽂아 문갑위에 올려놓았다. 잠이 덜 깬 듯 은은한 산수유 향이 방 안을 떠다녔다. (27쪽)
(나)
남자들은 광 밑바닥에 숨겨둔 종자들을 꺼내고 뒷간의 두엄을 뒤집었다. 곰삭은 두엄에서 밥 냄새만큼 푸짐한 냄새가 났다. 이따금씩 봄비가 내리고 나면 풀들은 부쩍 자랐고 날은 푹해졌다. 매창도 마당의 잡초를 뽑고 좁아진 빗물 도랑을 넓혔다. 찬모와 함께 뒤뜰에 채마밭을 가꾸었다. 호박과 아욱과 가지를 심었다. 매창은 가지꽃의 보랏빛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둥실 열리는 가지에 비하면 그 꽃은 얼마나 우아한가. 매창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가지를 꼭 심었다. 여름에 가지를 따다가 쪄서 쪽쪽 찢어 냉채를 만들기에 앞서 늦봄부터 그녀는 꽃이 언제 피나 아침마다 들여다보았다. (105쪽?106쪽)
(다)
항아리를 열어놓은 장독대에서는 익어가는 장 냄새가 진동했다. 바지런하게 항아리를 행주로 닦아놓아 햇빛이 비칠 때면 항아리에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윤금이가 된장이 제대로 익었는지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보다가 매창에게도 맛을 보였다. 짭짤하고 구수한 된장만 있어도 겨울 반찬 걱정은 없었다. 게장과 산초장아찌는 입맛 없을 때 물이나 녹차에 만 밥에 곁들여 먹으면 별미였다. 명아주잎과 깻잎 장아찌도 두 항아리 담가두었다. 손 많이 간다고 관두라고 해도 간장만 두 번 끓여 부으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면서 윤금이는 팔을 걷어붙였다. 부엌에서 물동이 나르던 시절 어깨 너머로 음식 만드는 걸 배워뒀다고 모처럼 큰소리를 쳤다. 채소를 다듬은 뒤 장독대를 정리하는 건 장덕이 몫이었다. 장독대에 물을 끼얹어가며 항아리와 바닥을 말끔히 소제하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털게로 담근 게장은 싱싱한 냄새가 일품이었다. 등껍질 안에 꽉 찬 살에서 단맛이 났다. 장덕이는 게장과 깻잎만 갖고도 밥 두 그릇을 비웠다. 매창도 요즘은 밥맛이 좋았다. 수수와 기장이 섞인 잡곡이었지만 혀에 단맛이 괴며 쌀밥마냥 잘 넘어갔다. 배가 부르면 시름도 줄어드는 법이다. 맛난 밥을 먹고 게을러진 몸으로 마당에 내려섰다. 매창은 손수 싸리비를 들고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과 국화 이파리를 쓸어서 한쪽 구석에 모아두었다. (128쪽?129쪽)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작가가 매창으로 하여금 그녀의 시대의 남성들조차 다가서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게 했음을 보여준다.
■ 천민과 서얼의 울분과 설움
- 모두 함께,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꿈
시의 달인이자 도인인 유희경도, 도저한 문필가이자 뜻 다 이루지 못한 경세가 허균도, 끝내 사람의 세속 삶의 울타리 너머로 완전히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반상과 적서의 구별이 엄연하고, 남성과 여성의 지체가 다르고, 나아가 당파싸움과 전란과 죽음과 굶주림이 군림하는 시대였다. 유희경도 의병으로 나가 공을 세워 면천을 하고 관직을 받았다. 기생과 어울리고 불도를 숭상한다 하여 모함을 받으면서도 율도국으로 상징되는 이상 세계의 꿈을 버리지 못한 허균. 그는 매창이 세상을 떠난 후 끝내 역모의 주역으로 처형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매창은 끝내 이 남성적 세속 세계의 울타리 바깥, 월명암과 변산 바다의 소나무 냄새, 바다 내음새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생명을 받았다 떠나는 인간의 숙명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거쳐 그녀는 그녀 자신이 평생 생각해 온 죽음과 묵연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작중에 그려진 매창의 \'처음과 끝\'이 모두 최옥정 작가 그 자신의 것이리라고…….
소나무와 바다와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한동안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 고니의 노래, 백조의 노래 : 작가 최옥정…
작가 최옥정 씨. 내가 그를 안 것보다 그가 나를 안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가 귀함을 일찍 알지 못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처음의 그녀는 그날 인사동 어느 한식집에 있었다. 마루방 같은 곳에 밥상 여러 개가 비좁게 놓인 서민풍 식당이었다. 소설가 방현희 씨와 절친이라고 함께 만난 그녀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키가 컸고 말이 시원스러워 마음에 담아 숨겨둘 것이 없는 투명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수술을 받고 양의학과 자연요법을 병행하며 계속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자연요법 쪽으로 미치자 나는 제이티비씨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암을 비롯한 큰 병에 걸린 사람이 복어 독 처방으로 호전되는 것을 본 기억이 난 것이다. 최 작가는 그렇지 않아도 복어 독을 복용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고, 나는 부디 특효가 있기를 기원해주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최 작가는 멀리 지리산에 가 있다. 서울에서는 병원 치료를 받고 쉬는 기간에는 산 깊은 곳에서 정양을 하는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런데도 어디 어두운 빛 하나 보여주지 않고 시종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작가의 강인하고도 대범한 성격이었다.
그 후 얼마 전 나는 이 소설 『매창』이 출판 지원을 위한 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해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어쨌거나 좋은 일이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즐겁게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저녁 자리를 최옥정 작가는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버텼다. 그가 그 자리를 문자 그대로 버텨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방현희 씨에게 들어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가 마침 통증이 심할 때였던 것이다.
이럭저럭 시일이 흐르고 이 소설 『매창』의 해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다가오자 나는 비로소 작품 원고를 복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최옥정 작가란 이렇게 간간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 태도나 말로서 그의 상황을 짐작해 보는 정도였다. 『매창』의 원고는 이와 달리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인지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왜 그는 조선시대 부안의 명기 매창의 이야기를 쓰려 한 것일까. 그는 고향이 익산이라 했으니 이웃 고장이나 다름없는 부안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을 법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알다시피 매창은 예사 기생 아니요 황진이와 함께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여성 시인의 하나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깊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익산 사람으로 시조 부흥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매창을 시조로 노래한 것처럼 소설가로서 최옥정 씨도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원고를 읽어가며 나는 이 창작의 깊은 동기를 읽어낸 것만 같다. 그것은 작가의 대상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과 동류의식이다. 평생 수백 편의 시를 쓰고 뭇 사람들의 비상한 칭송을 받았으되 어지러움, 문란함과 거리를 두고 깨끗한 예술의 세계에 머물다 끝내 그 사랑하는 거문고와 함께 묻힌 매창이었다. 매화꽃 보이는 창이라는 매창의 호는 계랑이라 불린 그녀가 스스로를 향해 붙인 호였다고 한다.
최옥정 작가는 이매창에게서 그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이상적 태도를 발견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된다.
원고를 읽어나가며 나는 처음에는 왜 작가가 매창 이야기의 부제를 \'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라 붙이려 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깊어짐에 나는 이 탄금가의 연주가 실수 없이 이어지기를 가슴 졸이며 읽었고, 마침내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나아감에 이야기의 새로운 예인이, 그 탄금의 명인이 탄생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방민호(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 매창에 들린 혼, ‘내가 매창’이다 - 집필 동기
매창에 대한 매혹과 호기심이 첫 번째 동기였다면, 사적인 이유가 두 번째다.
수십 편의 단편과 장편 두세 편을 쓰고 나서 든 생각이 취재해서 쓰는 걸 좋아하지도 않다보니 영영 못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그걸 극복해보고 싶었다.
매창이라는 인물이 내적 동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취재나 조사, 공부 등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찾아보며 대학원생이 논문 쓸 때처럼 몰두했으며,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한 단계 성장한 느낌도 들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게 작가의 지문이 묻게 마련인데 매창을 알면 알수록 닮은 점, 완전히 다르지만 닮고 싶은 점들이 많아서 애착을 많이 느꼈다.
- 유희경, 이귀, 허균, 권필 등 당대의 쟁쟁한 남성들을 움직인 여성 매창
한시집을 읽다가 매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도 절창이고 인물도 매력적인데 이렇게 문제적인 인간이 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화려하고 활달한 성정이 아니라 묵묵히 고요히 자신의 예술과 생각을 견지하면서도 강한 인물이라는 점이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 쓰고자 하는 열망을 부추겼다.
작품을 쓰다 보니까 구체적인 현실과 일상을 묘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매창의 삶이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버려서 몇 번이나 구성을 바꿔 다시 쓰느라 이 년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끝까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 속에서 매창 같은 예술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기생이면서도 지조를 지켰고, 삶의 고통을 예술로 극복하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낸 매창은 동시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시인과 지식인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솔메이트를 유지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 작가 최옥정은…
196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영어교사를 하다가 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했다. 등단 후에는 번역과 어린이 책 집필로 생활했다.
소설집으로 『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로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으로 『On the road』, 에세이집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로 『소설창작수업』, 번역서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을 수상했으며, 한문 고전읽기 모임인 이문학회에서 9년여 동안 수학했다.
그리고 작가는
“소설과 인생은 등을 맞댄 한 몸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거기서 창작의 모티브를 찾고자했다. 인간은 엄청난 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작은 돌부리에도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
얼핏 터무니없는 것 같은 이 말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왔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다. 내가 발견한 \'인물\'은 끝까지 나의 분신이라 여기며 책임을 지는 게 작가의 일이라 믿는다”고 한다.
196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영어교사를 하다가 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했다. 등단 후에는 번역과 어린이 책 집필로 생활했다.
소설집으로 『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로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으로 『On the road』, 에세이집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로 『소설창작수업』, 번역서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을 수상했으며, 한문 고전읽기 모임인 이문학회에서 9년여 동안 수학했다.
묵墨의 세상 009
애이불비哀而不悲 애이불상哀而不傷 027
벼락처럼 만나고 번개처럼 헤어지다 058
이 맑고 시린 공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095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117
너는 나의 심복지우니라 145
이화우 흩날릴 제 197
길은 멀고 몸은 고단하구나 2 42
초사한담樵士閑談 272
거문고의 노래 312
해설 | 이 소나무와 바다, 거문고의 울림 | 방민호 326
작가의 말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