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여보, 어머니 찾았대요, 찾았대!”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며 흥분된 목소리로 전한다.
“뭐? 찾았어? 어디 계시대?”
한쪽 양말을 신다 말고 방문부터 열어 제끼며 되묻는다. 문 옆 구석에 있던 물컵이 올칵 쏟아 진다. 애들은 물만 마시면 왜 제자리에 갖다 놓지 못한담…
“아니 어디 계시대? 괜찮으시대?”
연거푸 터지는 나의 질문에 아내는 “오리역 근처래요.” 하고는 걸레를 집어 들다 말고 아이들 방에 대고 소리친다.
“얘들아, 할머니 찾으셨단다”
“진짜요? 어디요? 어디래요?”
이방 저방에서 잠옷바람으로 애들이 튀어나오며 한 목소리로 물어댄다.
“오리역 근처라는데… 여보 빨리 가요.”
반코트를 집어 들며 아내가 나선다. 아니, 오리역이면 여기서 지하철로 4정거장 거리이니 걸어서 갈 곳이 아닌데… 젊은 사람이 걸어도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인데 85세 넘으신 노인네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셨을까? 그리고 그저께 밤에 나가신 뒤로 잠은 어떻게 주무시고 식사는 어떻게 하셨을까? 궁금증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무튼 지난 이틀동안 아무 소식도 없다 이제사 연락이 닿으니 꿈인가 싶다. 더구나 어제는 오후 내내 비까지 내려 이러다 객지에서 장사 지내게 되는 것 아니냐 우려하던 차에 이렇게 돌아오시게 되었다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차 시동 거는 손이 다 떨린다.
문득 지난 2박 3일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잠도 설쳐가며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도록 고생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
아무튼 어머니의 가출(?)이 잦아지다 보니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물론 방법은 혼자 집밖으로 못 나가시게 하는 것뿐이다. 요양원이나 시설에 모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할머니와 정을 나누며 오손도손 살아가는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문득 얼마전에 들은 다른 집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집 어르신은 치매가 워낙 중증인데다 수시로 집을 나가시려 해서, 가족들이 외출할 때면 방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아예 묶어 놓았다고 한다. 나가면 못들어 오시니 가족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결국 그런 방법을 취했겠지만, 그래도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슬퍼진다.
또 어느 집은 현관이 아니라 아예 방에서 못나오시게 열쇠로 잠가놓았다고 한다. 치매 증세가 심해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방바닥이며 벽지가 온통 훼손되거나 오물로 범벅이 되버린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겁이 더럭 난다.
휴대폰 ‘친구찾기’ 기능도 생각해봤으나, 매번 들고다니실 거라는 보장도 없고 목에다 걸어드리자니 불편하다고 내팽겨 버리실 테고… 기껏 허리에 채워드려도 배터리가 나가면 무용지물일테니 마땅한 방법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한담…?
그러다 문득 기가 막힌 방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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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잠이 많은 어머니는 저녁 드시고는 TV앞에 앉으셨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시곤 했다. 그리고 며느리가 잠자리를 봐드리면 바로 코를 고신다. 문제는 그 잠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어머니는 꼭 한밤중에 일어나셔서는 본격적으로 이 방 저 방으로 출석확인을 시작하신다. 딸내미건 아들내미건 차별이 없다. 노크도 없이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는 자는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 보신다. 자다가 인기척에 눈을 뜬 아이들이 놀라서 혼비백산한 경우도 있다. 컴컴한 방에 흰옷 입은 사람이 서있으면 누구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도 모자라 뺨을 쓰다듬는 다거나 발목을 만지며 확인하신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잘 때면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평소 손목힘을 자랑하시던 어머니가 이것을 그냥 넘기실 리 없다. 손잡이를 억지로 돌려보려 힘을 쓰시더니더니, 급기야는 손잡이를 뽑으신 적도 있다.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얼른 어머니 손을 잡아 끌고 방으로 모시고 가는 일은 언제나 우리 부부 몫이다.
***
정이 많은 어머니는 체구는 작으나 통은 크셔서 어려운 이웃을 보면 있는 대로 나누어 주고는 덤으로 당신 몫까지 내놓곤 하셨다.
70년대 흑석동 중앙대 앞에서 생계를 위해 하숙을 치던 시절에도 하숙생들 식사는 항상 넉넉히 마련해 주셨다. 방마다 앉은뱅이 밥상이 들어가면 뒤이어 양푼이나 냄비에 따로 밥을 담아 더 밀어 넣곤 하셨고, 한창 먹을 때인 학생들은 즐거이 양푼을 비우곤 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와 밥상 식구가 늘어나도 어머니는 싫은 내색 없이 모든 식구들이 푸짐하게 먹도록 상을 차려 내시고 양푼 가득한 밥을 덤으로 내어놓곤 하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학생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더 주리?”
나중에 하숙을 그만두고 우리 식구끼리만 밥상을 받아도, 항상 더 베푸는 데에 익숙하신 어머니는 식구들에게도 습관처럼 묻곤 하셨다.
“더 주리?”
1. 실종
1.1. 2박 3일
1.2. 잦아지는 가출
1.3. 문지기
2. 치매와의 전쟁
2.1. 한밤중 점호
2.2. 창문 전쟁
2.3. 물난리
2.4. 바나나에 옷을 입히자
2.5. 보물창고
2.6. 더 주리?
2.7. 바리케이트
2.8. 정리정돈
3. 불편한 진실
3.1. 치매 초기 증상들
3.2. 개인 위생
3.3. 안전 사고
3.4. 연탄 가스
3.5. 경매 충격
3.6. 시설이냐? 집이냐?
4. 추억 쌓기
4.1. 수호천사
4.2. 하숙
4.3. 칠순 잔치
4.4. 나들이
4.5. 팔순 잔치
4.6. 식탁 지킴이
4.7. 장봉도의 굴 잔치
4.8. 의암호 오리배
4.9. 낙화암의 추억
5. 마지막 길
5.1. 녹내장
5.2. 이별 준비
5.3. 엄니…
6. 긴 여운
6.1. 따뜻하신 분
6.2. 강직하신 분
6.3. 미래를 내다보신 분
6.4. 참희생을 실천하신 분
6.5. 헌신과 배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