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노트속의 여자
오늘도, 당신은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밥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죽어가기 위해 일하고 밥을 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오늘 왜 아름다운 여자와 데이트를 하지 않고, 이렇게 폐쇄된 공간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몸속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가는 것일까요?
한방울의 물!
물방울이 된 <나>.
<나>는 드디어 첫번째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때, <블루>가 샤워기의 스위치를 돌리고, 가느다란 물방울들이 갈망하듯 <블루>의 몸쪽으로 뻗으면서 쏟아져 내린다. <나>도, 하나의 물방울이 된 <나>도 천장에서 몸을 날린다. 무기력하면서도 빠른 정신적인 추락이 일어나면서, <나>는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속에 합류한다. 추락은 계속되고 있다. 마침내, 물방울로 변신한 <나>는 <블루>의 어깨에 떨어져내린다.
영도의 심장은 뛰기 시작하여 드디어 커다란 고동을 느끼고, 영도의 넋이 자신의 몸을 떠나, 신음하듯 펄떡이는 블루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 하고, 그녀의 등에 그림자가 실리듯 영도의 몸도 실리어, 마치 그녀가 그림자와 함께 이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려 할때, 그도 실려 나가는 듯 하다. 영도는 블루의 몸과 함께 어디론가 운반되어가는 것 같고, 한국의 어느 한 강물로 부터 태평양을 지나고, 다른 대륙의 큰 호수들의 기슭을 따라서, 멀리멀리 이집트까지 흘러가고 있으며, 그 조용한 흐름이 자장가처럼 여겨지면서.... 조용히 잠이 든다.
- 본문 중에서
1962년 진주 출생.
1980년 2월 서울 예일 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94년 4월 프랑스 파리 8대학 불문학 박사.
1996년 1억 고료 제3회 국민일보문학상에 장편소설「당신을 닮은 나라」당선되어 등단.
1990년 6월 ~ 1995년 1월 국제신문 프랑스 통신원.
1998년 3월 ~ 현재 기호학 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전임 교수.
저서: 중편소설「푸른 노트 속의 여자」와 다수의 단편소설.
번역서: 자크 데리다의 『다른 곶』과 『에쁘롱』.
<작가의 말>
푸른 노트속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