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제가 실장님을 유혹한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 동의한 사람 역시 실장님이세요. 제가 억……억지로 실장님을 강간하지는 않았다구요.”
“뭐라고?”
연오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던 혁주가 순간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어 반문했다.
“뭘 해?”
그를 안 지난 며칠 동안 처음으로 그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았다.
“사, 사실이잖아요.”
‘강간’이란 말을 뱉은 연오의 얼굴은 더 붉어질 수도 없게 화르륵 타올랐다. 그녀가 말하도록 용기를 주었던 분노가 자꾸만 스러졌지만, 그럼에도 연오는 혁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날 밤 일은 서로간의 충분한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 절대 저만의 일방적인 강간이 아니었다고요. 그러니까 자꾸 저만 나쁜 사람 만드시면…….”
“하, 강간? 당신이 나 권혁주를 강간해?”
감히 그를? 혁주는 어이가 없었다.
강간이라니……, 합의에 의한 것? 이 여자가…….
머루처럼 까만 눈이 불안하게 깜박거리는 것을 보며, 저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불러 모아야 했을지 짐작이 됐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맙소사, 여자에 의한 강간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했을 말인가. 미안하단 쪽지를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당했고, 그럼에도 이상하게 즐거웠다. 참 대단한 능력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의 허를 찔러 웃게 만드는 능력은 인정해줘야 했다.
프롤로그
1. 외로움의 끝, 일탈
2. 시계태엽처럼 돌아가는 일상
3. 마주침
4. 가면놀이
5. 나비의 날갯짓처럼
6. 뜨겁게 달콤하다
7. 등대가 되어주는 사람
8. 겨울 여행
9. Any Time
10. 폭풍
11. 노르웨이 숲으로 떠나보내다
에필로그 - 꿈의 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