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나부
열일곱의 소녀와 스물아홉의 여인이 만났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평생을 지울수 없는 추억을 만든 그들. 새로 태어난 여인의 귀와 이제야 보금자리에 든 소녀를 위해 축제를 연다. 그 축제 속에서 소녀와 여인은 또 다시 의식을 행할 것이다. 어느날 '나'는 가방을 잃어버린다. 그리곤 다시 소포로 배달되어온 가방. 그리고 그 이후로 누군가 나를 ?는 듯한 느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그가 날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건 정녕 꿈속의 일이었으리라. 나는 조심스런 손길 하나가 내 머리카락을 들추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기겁하지도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깊게 웅크리고 있는 내 귀에 한없이 보드라운 숨결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칸나처럼 뜨거운 여자애의 입술이었다…… 나는 시체마냥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꽃이 피었다 지는 시간? 아니면 후루륵 깊은 숨을 내쉬는 그런 동안? 숨결이 거두어지자 나는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조금 울었던가, 나는 그때.
다음날 늦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여자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두 귀를 어루만지다가 그제서야 그애와 내가 하룻밤 동안 아주 먼 곳을 여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 본문 중에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1996년 섬세한 문체미학과 세련된 내면묘사가 돋보이는 장편소설 <식빵굽는 시간>으로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내일을 이끌어갈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