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된 여성 시인, \n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걸작들로 널리 사랑받는\n크리스티나 로제티. \n\n\n이브의 딸(A Daughter Of Eve)\n\n한낮에 잠들어, 으스스한 밤\n 쓸쓸하고 차가운 달빛 아래\n깨어난 나는 바보였네.\n내 장미를 너무 일찍 꺾어버린 바보,\n 내 백합을 덥석 뜯어버린 바보.\n\n내 정원 꽃밭을 난 지키지 못했네.\n 시들어 완전히 버려지고서야,\n난생처음인 양 우네.\n아 잠들었을 땐 여름이었는데,\n 깨어나 보니 벌써 겨울이네.\n\n미래의 봄과 햇살 따사로운\n 즐거운 내일을 얘기한들 뭣하리―\n희망에 이것저것 다 발가벗겨져,\n더는 웃지도, 더는 노래도 못하고,\n 슬픔에 젖어 나 홀로 앉아 있네.\n\nA fool I was to sleep at noon,\n And wake when night is chilly\nBeneath the comfortless cold moon;\nA fool to pluck my rose too soon,\n A fool to snap my lily.\n\nMy garden-plot I have not kept;\n Faded and all-forsaken,\nI weep as I have never wept:\nOh it was summer when I slept,\n It\'s winter now I waken.\n\nTalk what you please of future spring\n And sun-warm\'d sweet to-morrow:―\nStripp\'d bare of hope and everything,\nNo more to laugh, no more to sing,\n I sit alone with sorrow. \n\n\n나 죽거든, 임이여(When I am Dead, My Dearest)\n\n나 죽거든, 임이여,\n 슬픈 노래 부르지 마세요.\n내 머리맡에 장미도,\n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세요.\n위에 녹색 잔디를 덮어\n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게 두세요.\n하여 생각나면 기억하시고,\n 잊으려거든 잊으세요.\n\n그림자도 못 보고\n 비도 못 느낄 거예요.\n나이팅게일이 고통스레\n 울어대도, 안 들릴 거예요.\n뜨지도 지지도 않는\n 황혼 속에서 꿈꾸다가,\n어쩌면 기억할지도,\n 어쩌면 잊을지도 몰라요.\n\nWhen I am dead, my dearest,\n Sing no sad songs for me;\n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n Nor shady cypress tree:\nBe the green grass above me\n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nAnd if thou wilt, remember,\n And if thou wilt, forget.\n\nI shall not see the shadows,\n I shall not feel the rain;\n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n Sing on, as if in pain:\n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n That doth not rise nor set,\nHaply I may remember,\n And haply may forget.\n\n\n사과 수확(An Apple-Gathering) 일부\n\n한때는 나랑 당신도 몸을 웅크린 채 얘기를 나눴죠,\n 바로 이 오솔길에서 깔깔대다가 쫑긋 귀를 세우며.\n이 길을 함께 걷곤 했는데 다시는\n 함께 걷지 못하리라 생각하면!\n\n이웃들이 그냥 지나가게 뒀어요, 한 명씩 두 명씩\n 무리 지어서. 마지막 이웃이 밤바람이 차졌다며,\n서둘러 가더군요. 하지만 난 늑장 부렸어요, 이슬이\n 하염없이 떨어져도 나는 계속 늑장 부렸어요.\n\nSo once it was with me you stooped to talk\n Laughing and listening in this very lane:\nTo think that by this way we used to walk\n We shall not walk again!\n\nI let my neighbours pass me, ones and twos\n And groups; the latest said the night grew chill,\nAnd hastened: but I loitered, while the dews\n Fell fast I loitered still. \n\n\n수녀원 문턱(The Convent Threshold)\n\n 지금 나를 보면 당신은 이러겠죠.\n내가 사랑했던 얼굴은 어디에 있나?\n그럼 내가 답하죠. 먼저 떠나,\n낙원에서 베일을 쓴 채 기다리고 있어요.\n언제든 샛별이 떠오르면,\n지구가 그림자와 함께 멀리 떠나,\n우리가 그 문 안에 무사히 들어서는 날,\n그때 당신이 그 베일을 벗겨주세요.\n올려다보세요, 일어나세요. 아득히 높은 곳에\n우리의 종려나무들이 자라고, 거처도 마련됐으니.\n거기서 우리 예전처럼 다시 만나,\n옛날처럼 서로 다정한 사랑 나눠요.\n\n If now you saw me you would say:\nWhere is the face I used to love?\nAnd I would answer: Gone before;\nIt tarries veiled in paradise.\nWhen once the morning star shall rise,\nWhen earth with shadow flees away\nAnd we stand safe within the door,\nThen you shall lift the veil thereof.\nLook up, rise up: for far above\nOur palms are grown, our place is set;\nThere we shall meet as once we met,\nAnd love with old familiar love. \n\n\n크리스티나는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여러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델이었다. 단테 로제티의 모델로는 흔히 그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Eleanor Siddal, 1829?1862)과 소설가로서 사업에서도 대성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아내 제인 모리스(Jane Morris, 1839?1914)가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단테 로제티가 1848년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가들과 라파엘전파를 결성한 후에 처음으로 완성하여 화폭에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머리글자 피알비(PRB)를 새겨 넣은 유화 《성모 마리아의 소녀 시절》(The Girlhood of Mary Virgin)과 그 이듬해에 그린 《수태고지》(Ecce Ancilla Domini!)의 성모 마리아는 크리스티나 로제티를 모델로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시 중에서 화가와 모델의 관계를 다룬 소네트 <한 화가의 스튜디오에서>(“In An Artist’s Studio”)를 보고는 흔히 시달과 제인 모리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시는 차라리 크리스티나 본인의 모델 경험에서 우러난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n \n- 옮겨 엮은이의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삶과 문학 이야기> 중에서

저자소개

영국의 여류시인. 오빠 가브리엘 로제티도 유명한 시인이었다. 따뜻한 감정과 자기 억제적인 사랑의 정신을 언어로 표현한 훌륭한 애정시를 썼다. 일생을 어머니와 함께 독신녀로 보냈으며, <내가 죽거든>, <기억해주요>, <행자의 행차> 등의 시집이 있다.

목차